구본창
Koo Bohnchang


1953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하여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에서 사진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플롬 학위를 취득했다. 1985년 귀국하여 현재까지 국내 외를 오가며 작가 및 전시 기획자로 다채로운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 사진계에서 그의 역할, 혹은 존재는 사실 간단하게 정리될 것은 아니다. 구본창은 국내에서 사진이 ‘현대 예술’의 한 장르로 온전히 자리매김 하도록 기초를 다졌고 ‘사진 작가’로서 여전히, 완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구본창의 사진은 사람과 사물, 풍경과 정물의 구분 없이 그 정체성을 오롯이 드러낸다. 대상에 내재된 정수(精髓)를 보는 시선, 섬세한 색과 톤, 완벽한 균형과 완성을 만들어내는 감각은 귀국 이후 전개해 온 다양한 작업들을 관통하는 요소들이다. 그를 알린 시리즈인 ‘태초에’ 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관조와 애도의 감정을 담은 ‘숨’, 끊임없이 천착해 온 주제인 한국적인 것에 대한 모색의 결과인 ‘탈’과 ‘백자’ 등. 구본창은 늘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험을 거듭하며 한국과 전통 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왔고 그 시도들은 언제나 호평 받았다.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미니멀한 그의 작업들은 섬세하고도 감각적인 색채와 더불어 한국현대사진에서 그만의 독특한 자리매김을 하게 한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구본창의 상업 사진과 아트웍(Art work)이다. 그가 독일에서 공부하고 1985년 귀국한 이후 영화·연극의 포스터 작업과 음반 아트웍, 패션 화보 등의 작업을 꾸준하게 해왔다는 것은 사실은 크게 알려지진 않은 부분이다. 그 시작은 유학 전부터 가깝게 지냈던 배창호 감독의 권유로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길(1991)›,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1993)›, ‹태백산맥(1994)›, ‹취화선(2002)›, 이창동 감독의 ‹시(2010)› 등이 그의 시선을 거쳐 탄생한 포스터 들이다.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음반 아트웍일 것이다. 이미 바이닐(LP) 마니아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아트웍인 영화 ‹깊고 푸른 밤(1985)› O.S.T의 표지, 사진을 태우는 효과를 시도한 방미 9집 ‹나의 사랑 대한민국(1985)›, 오선지 위에 스노우볼을 놓아 마치 달 위에 선율이 흐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 낸 황병기의 ‹미래악회 10주년 기념집(1987)›, 김완선의 서늘하고도 매혹적인 눈빛을 부드럽게 포착한 ‹애수(1992)› 등. 유학을 마치고 갓 돌아온 청년 구본창의 작업에는 그것이 상업이든 작업인 것과 관계없이 주어진 대상의 정체성을 깊게 바라보고 뛰어난 감각으로 실험하여 완성해 내는 작가적인 태도가 배어있다.  
-구본창은 2001년 삼성 로댕갤러리, 2002년 미국 피바디 에섹스 뮤지엄(Peabody Essex Museum), 2003년 한미사진미술관, 2004년 파리 갤러리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2006년 국제 갤러리, 교토 카히츠칸 미술관(Kahitsukan Kyoto Museum of Contemporary Art), 2007년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2010년 필라델피아 미술관, 2020년 시드니 한국 문화원에서의 개인전 등 국내 외에서 5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
-그의 작품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필라델피아박물관(Philadelphia Museum Of Art), 보스톤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 휴스턴 뮤지엄 오브 파인 아트(The Museum of Fine Arts, Houston),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 국내외 다수의 미술관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작품집으로는 『숨』(한길아트, 2006), 『탈』(한길아트, 2006), 『백자』(한길아트, 2006), 일본 Rutles 에서 출간된 『白磁』, 『Everyday Treasures』, 『공명의 시간을 담다』(컬처그라피, 2014) 등이 있다.



Album Design & Photograpy






구본창 앨범커버작업



  • 주사위 1집 (1985.04.25. 한국음반, HC-200263) 디자인 : 구본창
  • 정성조 깊고 푸른 밤 O.S.T (1985.05.10. 지구레코드, JLS-1201941) 디자인 : 구본창
  • 정광태 김치주제가 (1985.06.05. 태광음반, VIP-20016) 디자인 : 구본창
  • 방미 9집, 불꽃놀이/나의 사랑 대한민국 (1985.10. 지구레코드, JLS-1201960) 사진, 디자인 : 구본창
  • 미래악회, 미래악회 창립 십주년 기념 작품집 (1987.12. 지구레코드, 미표기) 사진 : 구본창
  • 방미 10집, 사랑도 추억도/사랑이 이런거라면 (1986.03.01. 지구레코드, JLS-1201999) 사진 : 구본창
  • 김수철 두 여자의 집 O.S.T (1987.12.12. 서울음반, SPDR-097) 사진 : 구본창
  • 김명곤 미미와 철수 청춘스케치 O.S.T (1987.06.15. 지구레코드, JLS-1202112) 사진 : 구본창
  • 김명곤 어른들은 몰라요 O.S.T (1988.05.01. 지구레코드, JLS-1202179) 사진 : 구본창
  • 김완선 애수 (1992.04. 아세아 ALS-1936) 사진 : 구본창
  • 안진우 Life Story Zinoo (1992.06. 신세계음향, SIS-920323) 사진.디자인 : 구본창
  • Va - 이미숙의 드라마 (2001.12.28. 예당음향, YDCD-573) 사진 : 구본창
  • Va - 페퍼민트 (2003.09.19. 디키뮤직) 사진 : 구본창



사진가의 디자인: 구본창의 앨범 커버 디자인


전가경 – 디자인 저술가, 사월의눈 대표
기억을 계단 삼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와 사진가 구본창과의 첫 만남에 대학로 책방이음이 있다. 어느 날 그곳에선 사진가 이상엽이 사진책과 관련된 반가운 행사 하나를 기획했고, 연계 강연의 일환으로 구본창이 초대되었다. 청중 중 한 명이었던 난 강연이 끝나고 구본창의 첫 작품집이자 사진책인 『생각의 바다』(1992)를 그 자리에서 구매했고 덩달아 그의 자필 서명까지 받는 행운도 누렸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책을 펼쳐보니 그가 서명해준 표제지에는 당시의 시간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2008. 4. 구본창”
-기억은 모르지만, 현실 공간의 사물은 시간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나와 사진가 구본창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후 그는 직접 서명한 엽서로 자신의 전시 소식을 띄엄띄엄 알려왔고, 나로선 큰 영광이자 고마움이었기에 전시 방문으로 그에 종종 화답했다. 그중 ‘새로운 발견’이라는 상투적인 용어로 수식할 수밖에 없는-왜냐하면 ‘새로운 발견’이야 말로 가장 정직한 표현이므로-전시가 하나 있었다. “구본창의 행복한 기억”이었다.
-첫 만남으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때였다. 서촌의 사진 갤러리 류가헌. 초입에 들어서서 오른쪽 사선 방향으로 한옥 마당을 가로지르면 작은 전시 공간을 마주할 수 있다. 그곳엔 뜻밖의 사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포스터, 책, 리플렛과 같은 인쇄물이 공간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떤 짐작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직접 디자인하신 건가요?” 예상했던 답이 돌아왔다. “그렇죠.” 그는 특유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활기차게 웃었다.
-구본창은 직접 디자인한 몇몇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해 주었고, 그중 인상적인 인쇄물 중 하나는 『아, 대한민국!』이라는 도록이었다. 이는 구본창이 1992년도에 기획한 전시로 동명의 전시 도록까지 직접 디자인한 것이었다. 세로로 긴 포맷과 표지가 예사롭지 않았고 내지는 더욱 파격이었다. ‘대한민국’에 수반되는 상투적 이미지를 비꼬기라도 하듯 구본창은 이불보와 이불보에 있는 봉황 이미지를 복사하고 조합해서 독특한 질감의 표지를 만들어냈다. 본문은 타이프라이터(typewriter) 계열의 서체를 적용하고 과감한 이미지 몽타주(montage)를 곳곳에 배치했다. 첫 구본창론을 쓴 기계비평가 이영준의 글이 수록된 도록으로서, 해당 인쇄물은 형식이자 내용으로서도 매력적인 아이템이었다. 그 도록은 내 작업실 서재에 꽂혀있다. 아마도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부를 선물 받거나 구매한 것 같은데, 다른 경로로 구매한 기억은 전혀 없다. 그리고 이 ‘새로운 발견’이란 사진가가 아닌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구본창이었다. 그날 나는 사진가 구본창이 아닌, 그래픽 디자이너 구본창을 만났다.


안녕히
-구본창의 본래 전공은 경영학이었다. 그런 그가 새로운 전공을 찾아 독일로 떠난 해가 1979년. 현재 그를 수식하는 직업명은 사진가이지만, 그가 당시 공부했던 전공의 정확한 명칭은 ‘사진디자인’이었다. 공식 학위도 ‘디플롬 디자인(Diplom Design)’이었다. 구본창의 섬세한 안목과 타고난 디자인 감각과 별개로, 귀국 후 디자인과 사진을 가로지르는 감각적 활보에는 사진과 그래픽 디자인의 상호작용을 몸소 터득한 독일에서의 공부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디자인’을 전공했던 만큼 그는 함부르크 국립조형미술대학교에서 시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기초 조형 연습을 수차례 진행했다. 레터링(lettering)은 기본이었고, 시지각 훈련부터 엽서, 로고타입 및 포스터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독일에서 그가 공부한 것은 사진과 동시에 그래픽 디자인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구본창의 ‘부산물’일 수 있으나 디자인 관계자인 나에겐 시선이 한참 머무르는 명료한 그래픽 디자인이었고, 심지어 그 모습은 꽤 근사했다.


그중에서도 그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1981년과 1982년 그리고 1984년으로 이어지는 사진전 포스터들은 사진가로서 입지를 다져나가는 구본창의 전사이자, 준-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그의 행보를 볼 수 있는 일종의 미시사다. 독일에서 훈련받았을 단아한 모더니즘을 기초로 구본창은 자신만의 독특한 미감을 구축해 나갔는데, 그 미감이란 간혹 유머 혹은 유연한 제스처로 모더니즘의 경직된 선을 튕겨보려는 그의 실험성이다. 물론 이 일련의 디자인은 개념적으로도 뛰어났다.
-이렇게 디자이너로서도 단련된 구본창은 1985년 한국에 귀국한다. 유학 전 대기업 사원으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학부 전공으로부터 이탈한 그가 사진가로서의 새로운 모색을 실천하는 한국에서 디자인은 더이상 낯선 과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 엽서집을 손수 디자인했고, 한마당이라는 사진전문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며 포스터를 직접 디자인했다. 한국에서 그를 만나는 자들에겐 다소 생소한 풍경이었을지 몰라도 구본창의 입장에서 그것은 독일에서 체득한 감각의 연장 그 이상 이하도 아니지 않았을까.





“제인의 테마”


정방형의 정사각형 틀 안에 자주빛의 도형들이 떠있다.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남성의 프로필이 왼쪽에, 눈이 가려진 여성이 하단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무중력의 푸르스름한 우주 공간에 인물 사진과 어디선가 오려낸 자주빛 색종이가 파편적으로 유영하는 듯한 인상이다. 강렬한 보색 대비가 영롱하다. 구본창이 귀국한 해인 1985년, 대학동기인 배창호 감독의 요청으로 디자인했다는 영화 ‘깊고 푸른 밤’의 OST 앨범 커버 앞면이다. 커버에는 이 앨범이 80년대의 산물임을 가리키는 두 개의 단서가 숨어 있다. 바로 레터링과 화면에 적용된 조형 양식이다.
-커버에 인쇄된 “깊고 푸른 밤” 레터링은 1970-80년대 익명의 레터러가 작도했을 한글 조형의 전형을 보여준다. 정방형 틀에 기초한 한글 레터링이 당시 흔히 마주했을 글자 풍경의 한 단면이다. 레터링이 국내 80년대 시각 환경에 대한 지시체라면, 화면에 재현된 양식은 당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그래픽 분과의 흐름을 연상시킨다. 1985년도 한국에 귀국한 구본창은 1970년대 후반부터 점진적으로 시도되었을 뉴웨이브 타이포그래피의 흐름을 분명 인지했을 거다. 고백하건데, 나는 이 커버를 보는 순간 그래픽 디자인 역사에서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대표 주자로 흔히 호명되는 댄 프리드먼(Dan Friedman)이나 에이프릴 그레이만(April Greiman)의 화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진공 상태에 내던져진 형형색색의 활자들과 그림들은 모더니즘의 강박적 질서로부터 벗어나 사방에서 부유하고 유영한다. 그래서 이 앨범 커버는 경이로움과 동시에 이질적이다. ‘깊고 푸른 밤’ 앨범 커버는 한국 그래픽 디자인계가 직선의 미학을 열정적으로 실천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들이민 낯선 감수성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파격적인 부분은 셀링 포인트가 되었을 주연역의 안성기와 장미희를 제시한 방식 아닐까.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남성이 안성기이며, 여성이 장미희임을 알아본 대중은 극히 적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당시 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이었다고 한들, 인지도 높은 두 주연 배우를 이토록 모호하게(?) 처리한 것은 당시로선 큰 모험이었을 것이다. 문제적 앨범 커버지만 영화의 세련된 영상미와 한국 1세대 재즈 연주자 정성조의 음악을 염두에 둘 때 구본창의 커버 디자인은 되려 이 조합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우아한 파격이었다. 이 작업 이후 구본창은 지구레코드에 소속되어 있는 두 가수의 음반도 차례로 디자인한다. 가수 정광태 앨범의 경우, ‘깊고 푸른 밤’의 시각 언어가 이어지는 반면, ‘방미 9집’에서는 또 한 번의 색다른 방식을 시도한다. “불꽃놀이”, “나의 사랑 대한민국”이라는 노래 제목 위로 방미의 사진이 불타고 있다. 그러나 방미는 그 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다.


‘깊고 푸른 밤’에서는 찢고, 잘라내고, 붙였고, ‘방미 9집’에서는 태웠다. 최소한 이 세 종의 앨범 커버에서 보건데, 구본창은 이영준이 평했듯이 “사물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기호가 발산하는 종전의 의미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기호의 균열을 탐하는 것이다. 앨범 커버 디자인에서 한 발짝 물러나 당시 구본창의 사진작품을 스캔해 보건데, 앨범 커버엔 구본창이 80년대 중후반 전개해 나간 예술적 실천이 반영되어 있다.
-한국 1세대 북디자이너 정병규가 디자인한, 그래서 책 그 자체로서도 고유한 가치가 있는 ‹생각의 바다›를 펼쳐보자. 그곳엔 ‘깊고 푸른 밤’ 앨범 커버 디자인과의 연동성이 곳곳에 스며있다. 고정된 기호를 해체하듯 추상적이고 모호한 장면들이 페이지 사이를 관통한다.
-‘깊고 푸른 밤’의 앨범 화면은 그곳에 자연스러운 하나의 구성물 마냥 존재하는 인상이다. 이 책이 드러내는 실험의 연작이 잉태한 하나의 산물로서 ‘깊고 푸른 밤’ 앨범 커버가 서있는 것이다. 구본창이 시도한 실험의 앨범 커버로의 전이 현상은 미래악회 앨범 디자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생각의 바다›에도 수록되어 있는 작품으로 구본창이 1988년도에 발표했다는 ‹탈의기› 연작은 ‘미래악회 창립 10주년 기념’ 앨범 커버와 상동성을 지닌다. 형체를 잃은 모호한 사물과 파랑과 주황이 연동하는 화면 속에 오선보가 헤엄치듯 유연하게 흐른다.


이 일련의 앨범커버가 당시 한국 시각문화에서 흥미진진한 이유는 199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주류’ 시각 언어로 자리한 포스트모던 계열의 조형 양식을 일찍이 한국의 땅에서 마주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다시금 그것은 “반란”이었고, 이질적인 조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반란도, 실험도 자기 갱신이라는 자기모순을 안고 살아가야 하듯, 앨범 커버에서의 구본창의 시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깊고 푸른 밤’에 앞서 1985년 2월 발매한 대학연합밴드 ‘주사위 1집’에서 구본창은 한 편의 옵아트(Optical art)를 완성했다. 이는 1960-70년대 독일 울름조형대학을 중심으로 발아하고 뻗어 나갔을 정교한 조형 연습의 흔적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화면의 매력은 긴장감 있는 옵아트의 추상성 안에 극적인 대비로서 선명하고도 구체적인 구상물로서의 주사위를 배치한 감각이다. 커버 앞면뿐만 아니라 입체적인 정육면체를 시각화한 뒷면은 ‘주사위’라는 밴드명에 개념적으로 착실하게 디자인되었다. 이로부터 훗날 제작된 ‘안진우 1집’은 타이포그래피의 운영이 눈에 띈다. 몽환적인 앞면의 사진 뒤로 뒷면엔 뉴욕 뒷골목으로 추정되는 사진에 세로로 배열한 곡명이 인상적이다. 사진 언어 안에 숨겨진 선을 읽어낼 줄 아는 구본창은 그에 호응하는 타이포그래피를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깊고 푸른 밤”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앨범 커버는 음악을 향한 첫 관문이기도 하다. 한때 모던락에 심취했고, CD라는 물질로서 음악을 향유하던 때, 나에게 음악에 대한 판단 기준 중 하나가 앨범 커버였다. 음악을 청취하기에 앞서 음반 위에 인쇄된 시각 언어는 음악에 대한 똘똘한 가이드였다. 그것은 음악인이나 밴드가 청자에게 건네는 첫 제스처다. 그런 의미에서 책이 독자와 대면하는 첫 공간인 표지와 그 기능과 역할이 유사하다. 다만 앨범 커버의 조형적 자유도는 높다. 문자 중심적 사고관이 여전히 강력한 책에선 ‘정보’라는 메시지 전달이 우위에 있다. 반면, 앨범 커버는 정보 전달에서 자유롭다. 음악은 청각에 기초한 만큼 그것이 전달하는 것은 ‘앰비언스(ambience)’이지,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디자인 저술가 애드리언 쇼네시(Adrian Shaughness)는 많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앨범 커버는 디자인으로 진입하기 위한 하나의 관문이었다고도 썼다. 그만큼 디자이너에게 앨범 커버는 근사한 작업이자 재량을 펼치고, 자유도를 누릴 수 있는 정사각형의 이상적 그래픽 무대이다.
-구본창과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는 한국 1세대 북디자이너 정병규는 그를 두고서 말했다. “그는 가장 매체 지향적 사진가이다.”구본창은 매체를 직관하는 힘이 있는 사진가다. 그에게는 순수 사진의 세계를 온전히 독자적인 언어로 풀어가면서도 상업 사진으로 이내 모드 변환할 수 있는 날렵하면서도 직관적인 감각이 있다. 이쯤이면 구본창이 전개한 앨범 커버 디자인이 낯설기 보다는 당연한 것으로 귀결된다. 순수와 상업 사진 간의 유연한 모드 변환은 상업과 복제를 전제로 하는 디자인 행위에 이질감 없이 순응한다.
-작년 12월 5일, 코로나19 확진자수가 다시금 가파르게 치솟고 있을 때 불발되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구본창의 80~90년대 사진책 이야기 강연을 대구에서 가까스로 열 수 있었다. 그는 200페이지가 넘는 PPT 자료로 사진을 축으로 보는 한국 시각문화의 파노라마를 선사했다. 그가 수집하고 소유한 사진책들 사이로 이따금씩 등장하는 포스터와 엽서, 로고타입 그리고 앨범 커버는 모두 그가 디자인한 인쇄물이었다. 자리에 있던 디자인 전공자들은 매번 감탄사를 내뱉었고 시종일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가 들려준 한 일화가 있다. 1985년 귀국하여 처음 전시한 곳이 지금은 사라진 한마당이라는 사진 전문 갤러리였다. 그는 당시 유럽에서 찍은 컬러 사진과 셀프 폴라로이드 작품을 전시했고, 당연하지만 전시 포스터도 디자인했다. 이태리 피사에서 찍었다는 사진은 화사한 연두색 잔디밭에 여유롭고 자유분방하게 드러누운 관광객들을 찍은 것이었다. 그 위로 피사의 사탑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매우 아름다운 이 사진은 가로 포맷의 포스터에 꽉 들어찼고, 그 아래로 구본창이 직접 디자인하여 만들었다는 낙인이 기타 전시 정보와 함께 기입되었다. 이 포스터를 본 당시 구본창의 제자들이 말했다고 한다. “사진계의 포스터가 달라졌어요.”라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응수했다. “선생님, 뛰어난 디자이너세요.”
-언젠가 사진가가 아닌, 디자이너 구본창의 작업을 하나로 묶을 날이 있기를 희망해 본다.
-그곳엔 당연히 그의 앨범 커버 디자인도 한 자리를 차지하리라.
* 중간 제목은 앨범 ‹깊고 푸른 밤› 앞면의 수록곡을 순서대로 붙인 것이다.



Design Study 1984.







인터뷰 ·Interview



인터뷰 일시
2021.02.06

인터뷰 장소
구본창 선생님 작업실

인터뷰어
고경표, 오석근

촬영
권준엽, 김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