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음반
Anta Production



안타음반과 음반 제작자 안치행


안타는 야구에서의 말하는 ‘hit’의 그 안타가 맞다.
1967년 기타 안치행, 베이스기타 오덕기, 드러머와 보컬에 유영춘, 올갠 장현종으로 구성된 ‘실버 코인스’가 미 8군 오디션에서 더블 에이(AA)의 최고점을 받는다. 이들은 당대 쇼비즈니스 업체 중 최고점에 있었던 화양(和陽) 소속의 그룹사운드로 이후 미8군 인기가수 김계자와 무용수를 영입하여 자신들의 레퍼토리를 만들어서 전국을 휩쓸었다. 그러나 활동 도중 큰 교통사고를 겪고 미8군 쇼가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1970년대 초반 조선호텔의 꼭대기에 문을 연 나이트클럽 ‘투모로우’로 무대를 옮긴다. 이때 그룹명을 ‘영사운드(Young Sound)’로 변경했고 리드기타 안치행, 보컬 유영춘, 키보드 장현종, 올갠 장성현에 탈퇴한 베이스 오덕기 대신 장대현과 드럼 박동수로 활동을 이어간다.
-당시 영사운드의 음악은 번안곡과 사이키델릭, 락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한국 음악계에서 확연하게 다른 스타일을 구축해갔다. 대부분의 곡은 안치행이 직접 작사, 작곡했고 라틴 계열의 감성적이고 섬세한 가사와 차분하고 안정된 사운드가 돋보이는 음악이었다. 안정감 있는 연주와 더불어 편안하고 대중적이었던 이들의 음악은 완전한 ‘젊은’이들의 음악보다 좀 더 폭넓은 층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레스토랑 ‘포시즌스’와 명동의 생음악 클럽인 오비스 캐빈(O.B's Cabin) 등으로 점차 영역을 넓혀갔다.
-영사운드의 추축이었던 기타리스트 안치행은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를 연상시키는 재즈 기타리스트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사실 정규 기타교육을 받은 경험은 길지 않았다. 그는 1975년 기타 유학을 가기 위해 영사운드를 탈퇴하나 얼마 안 있어 당시 조용필의 매니저였던 이희택에게 조용필의 음반 제작을 부탁받는다. 이는 사실 ‘킹박’이라고 불렸던 킹레코드의 대표 박성배에게 먼저 제안했던 것이었으나 박성배는 이를 거절했고 안치행이 조용필이 가져온 음악들을 편곡하고 영사운드의 음악을 더해 음반을 제작한 것이다. 안치행에 의하면 “녹음을 다 해 놓고 홍보도 안했던” 이 음반이 바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실린 ‹趙容弼 돌아와요 부산항에·너무 짧아요 안치행 편곡집(서라벌레코오드사, 1976 K-8015›이다.
-그룹사운드로 활동하며 연주뿐만 아니라 작사, 작곡, 편곡에 능했던 안치행의 감각은 제작자로 전향한 이후 트로트와 고고가 결합된 ‘트로트 고고’로 전성기를 맞는다. 최헌의 ‹오동잎›, ‹앵두›, ‹세월›, 윤수일과 솜사탕의 ‹사랑만은 않겠어요›, 김 트리오의 ‹연안 부두›, 윤민호의 ‹연상의 여인›, 박남정의 ‹아! 바람이여›, 나훈아의 ‹영동 부르스›, 희자매(인순이)의 ‹실버들› 등이 그가 작사·작곡·편곡하여 안타음반을 통해 탄생한 곡들이다. 1977년 개최된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골든 그레입스를 발굴하여 윤수일이 윤수일과 솜사탕을 거쳐 솔로로 데뷔하게 만든 길을 열고 대마초로 활동할 수 없었던 김추자의 리싸이틀 앨범을 낸 것도 안치행이었다.
-안타음반은 중심인 안치행 외에도 작곡과 편곡에 김기표가 있었고 홍보는 이태현이 담당하고 있는 분업 체계가 갖춰져 있었다. 이들은 모두 안타 음반 이전에 더맨이나 검은나비와 같은 국내 1세대 그룹사운드 출신의 뮤지션들이었고 함께 1970년대 중후반의 전성기를 열었고 1980년대까지 그 흐름을 이어간다. 안타음반은 트로트를 근간으로 하면서 새로운 장르를 섞고 실험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았는데 1981년 솔개트리오의 데 뷔 음반은 록과 트로트와 더불어 컨트리, 포크, 프로그레시브 등의 장르를 망라한다. 이 같은 성향은 이후 박남정, 문희옥 등에서도 나타나는데 장르를 넘어 ‘메들리’를 시도하여 히트시킨 것도 안치행의 감각이었다.
-안타음반은 1998년 사운드 코리아로 이름을 바꿨고 현재도 운영되고 있다. 전성기와 같지 않지만 안치행 자신도 후배 음반 제작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하거나 도움을 주고 있고 2017년부터는 직접 불경에 힙합 리듬을 접목한 힙합불경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설명만으로 음악인 안치행의 모든 스타일을 정의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트로트를 기반으로 하는 친숙하고 대중적인 음악을 제적하는 감각, 주현미와 인순이 등 걸출한 음악인들의 목소리를 알아보고 발굴하는 눈, 그리고 거침없는 추진력은 그가 오늘날까지 음악인이자 제작자로써 거듭 회자되는 이유일 것이다.